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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사건 사고

일반인은 잘 모르는 HDTV 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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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도쿄 올림픽 이후, 고화질 TV에 대한 수요를 예상하고 고정세 TV 기술을 NHK 주관으로 민관합동으로 개발 시작

1979년 일본은 세계 최초로 아나로그 베이스의 일본식 Hi-Vision(MUSE) 방식을 개발해서 지상파 방송 개시

1991년 NHK는 아나로그 Hi-Vision 방식을 더 개량해서 인공위성(BS)을 이용한 Hi-Vision 고정세 방송 개시

- 일본은 전세계 시장을 일본식 Hi-Vsion 시스템(가정용 TV/녹화기, 방송용 장비 등)으로 만들어 통째로 먹기 위해, 시장이 제일 큰 미국을 상대로 협상 : 미국에게 모든 기술을 공짜로 줄테니, 일본식 Hi-Vision을 시스템을 미국의 표준으로 채택해 달라고 제안하며, 정치계와 경제계 그리고 학계 모든 분야를 아우르며 전방위 로비 시전.

1993년 일본 때문에 전자 산업이 완전히 몰락한 경험을 한 미국은, 또다시 큰 위기감을 느끼며 일본의 달콤한 제안에 대답을 주지 않고, AT&T Bell Labs, General Instrument, Philips, Sarnoff, Thomson, Zenith 그리고 MIT 대학등 미국 내의 유수한 기업과 대학연구 기관을 모아 Digital HDTV Grand Alliance를 만들어 당시 미국을 중심으로 떠오르던 디지털 기술을 이용한 독자적인 HDTV 시스템의 연구를 시작.

- 일본은 미국이 자신들의 제안에 응답을 하지 않자, 동맹군을 확대하여 미국을 굴복시키자는 생각으로, 당시 전자업체에 다크호스로 뛰어오르던 한국에 집요하게 추파를 던짐 - 일본은 정계와 KBS 방송연구소, 금성, 삼성 등 TV 산업에 영향력을 가진 단체들에게 한국내 방송에 대해서는 특허료를 요구하지 않고 기술을 공개할테니, 일본식 Hi-Vision을 한국의 HDTV 표준으로 삼아 달라고 집요하게 로비를 함.

- 이 사이, HDTV 시스템의 연구에 뒤늦게 뛰어든 미국은 General Instrument와 Zenith가 이미 오래전 부터 디지탈 방식의 HDTV 코덱과 전송 방식에 대해 연구를 많이 해 놓은 것을 알게되었고, 실제 구현 실험에 급하게 돌입하여, 일본식 보다 방송 전파대역폭이 좁아 효율적이면서도 더 뛰어난 화질을 낼 수 있다는 것을 검증하는 데 성공.

- 이후, 미국이 필요한 것은 자국의 망가진 전자산업을 대신해서, 일본제 TV를 질과 가격에서 경쟁해 줄 일본의 대항마를 찾는 것.

- 또한 미국은 일본의 디스플레이 제품에 대항해서 미국산 디스플레이를 개발하기 위한 미국 디스플레이 조합 (U.S. Display Consortium)에 한국의 금성, 삼성 등을 회원사로 받아 들임.

1996년 미국 디지털 기술을 이용한 HD 방식을 미국의 표준으로 선정 !!!

- 미국은 이후, 한국 전자산업의 능력과 수준과 확인하고, 자체 방식으로 가기를 결정한 유럽은 포기, 한국에 적극적인 구애공세를 폄. 미국은 한국이 미국 표준방식의 HDTV(ACTV) 시스템을 한국의 표준으로 삼아주면, 모든 특허를 거의 공짜로 공유하겠다고 제안 함 (이전에, 다행히도 금성은 미국 ACTV의 지상파 방송 특허를 가진 제니스를 합병함)

2000년 한국 정부는 미국과 일본 사이에서 고민하다, 일본 업체들의 견제와 방해로 매년 이익율 1%대로 회사의 흥망을 고민할 정도로 고전을 거듭하던 금성, 삼성등의 기업체들 의견을 존중해서, 미국의 디지탈방식 HDTV 시스템을 한국의 HDTV 표준 방식으로 선정함.

2000년, 일본은 미국이 한국을 자국의 HDTV연합군으로 끌어들이는데 성공하자, 눈물을 머금고 지난 40여년간 개발해온 자국의 아나로그 방식 HDTV 시스템을 포기하고, 미국 방식을 일본의 표준으로 받아들이기로 공식화 함 (일본의 학계는 이미 1994년경 부터, 미국의 디지탈방식이 일본의 아나로그 방식보다 훨씬 더 좋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


이후, 한국은 미국과 협력하여 실로 어마어마한 세계 가전시장의 변화
- 일본은 당시 엄청난 고가였던 대형고화질 TV를 소니의 트리니트론 그리고 신제품인 LCD를 이용해서 40인치 기준으로 대당 4000달러 정도의 소비자 가격으로 맞추는 것을 목표로 실행에 나섬.

- 한국의 삼성은 당시 소니의 트리니트론에 버금가게 만든 삼성전관의 고화질 대형 브라운관 디스플레이를 버리고, 40인치 TV 기준으로 2000년대 중반 대당 1000달러의 소비자 가격의 LCD TV를 만들어 낸다는 목표로, 대대적인 투자를 개시. 이에 뒤질세라 사명을 금성에서 LG로 바꾼 LG 또한 대규모 투자를 단행 함. 양사 모두 CRT에서 LCD로 넘어 가는 중단 단계인 중가의 PDP를 생산해서 HDTV 시장을 키우며 일본 업체들을 견제 함.

- 당시 한국이 40인치 LCD TV를 1000달러에 판매하겠다는 소문을 들은 일본업계는 "미친 한국놈들, 5년안에 망하려고 작정했군 www"라고 비웃음

- 미국은 USDC를 통해 한국이 일본의 대형 LCD를 기술, 성능, 가격에서 완전하게 쳐바르는 것을 보고, 미국 건국 이후 최초로 만들었던 민관 공동 국책연구 조합이었던 미국 디스플레이조합(U.S. Display Consortium)에 지원을 중단해서, 유야무야로 만듬 : 한국이 저렇게 잘하는데, 미국이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서 미국이 따로 할 필요가 없다는 것.

- 이후 40인치 기준 대당 1000달러 목표에 맞추어, 공장 설비를 준비하고 제품 설계와 생산을 했던 한국은 2000년대 중반 실제로 그 목표에 도달을 했고, 4000달러 수준을 목표로 했던 일본의 전자업체들은 한국과의 경쟁에서 완전히 개박살 나서, 자신들이 가졌던 기술을 대만(일부는 중국으로)에게 거의 공짜로 다 넘기고 폐업 함 - "나는 이렇게 죽어 가지만, 대만 니들은 한국을 꼭 죽여 복수해 주길 바란다"라는 유언을 남기며 죽어감 ...


이런 역사를 거쳐, 일본의 TV와 디스플레이 업체들이 거의 완전 몰락하여, 현재에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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