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제의 사진은 ‘어머니 보고 싶어’, ‘배가 고파요’, ‘고향에 가고 싶다’고 한글로 적힌 일본 큐슈 도요스(豊洲) 탄광 합숙소의 낙서가 그것이다. 일부 언론에서는 사진전을 소개하며 이 낙서 사진을 들어 “강제징용 되어 온갖 노역에 시달리던 조선인들은 이렇게 밖에는 고달픈 마음을 달랠 길이 없었을 것”이라고 해설하고 있다. (미디어다음, 2005년 11월 19일)
이 낙서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치쿠호(筑豊) 지역의 향토사학자 김광렬씨가 그의 저서에서 비교적 상세하게 논하고 있다. 그의 기록을 이용하여 낙서의 문제점을 간단히 정리해 본다. (金光烈, 足で見た筑豊:朝鮮人炭鑛勞動の記錄, 2004年, pp.130-150)
이 낙서는 조선총련 산하 단체인 재일본조선문학예술가동맹이 한일수교에 대한 반대 운동의 일환으로 1965년에 제작한 영화 “을사년의 매국노”를 촬영하는 가운데 연출된 것이다. 이 영화에 강제연행의 흔적을 담기 위해 제작진 4명이 치쿠호 탄광촌에서 현장 촬영을 했다. 그때 폐허가 된 징용공 합숙소에서 제작진 가운데 녹음을 담당한 여성이 나무를 꺾어 벽에 문제의 낙서를 새긴 것이다. 위조 사실을 상세히 밝힌 西日本新聞의 취재에 대해, 영화 제작진 가운데 한 사람은 당시 폐허가 된 합숙소에서 촬영할 것이 없어서, 제작진이 모두 합의하여 낙서를 새기도록 했으며, 부드러운 필체로 하기 위해 여성에게 쓰도록 했다는 사실을 자백했다.
영화 촬영 이후 의외로 이 낙서에 관한 사진이 사실인양 일본 사회에 확산되어가자 영화 제작진은 고민 끝에 연출 사실을 밝히기로 했다고 한다. 강제연행 조선인에 관한 연구의 대부(大父)라고 할 수 있는 박경식(朴慶植)씨는 일찍부터 이 낙서가 위조된 것임을 알고 있었으며 김광렬씨에게 문제의 낙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낙서의 내용은 당시 징용공들의 마음이나 처해진 상황을 아주 잘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당시 수용된 징용공이 썼다고 하는 것은 역사의 날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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