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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정보

인류 역사상 가장 풍요로웠던 일본의 버블경제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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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버블시대를 살았던 일본인들의 체험담이다.

- 이력서만 내면 무조건 합격 되었다.

- 면접만 보면 무조건 합격 돼.

- 아르바이트 책이 전화번호부 보다 두꺼웠다.

- 1년 신입의 연봉이 2천만엔 (2억원) 이었다.

- 건설업 노동자는 1년 연봉이 4천만엔(4억원)이었음에도 인력이 부족했다.

- 대학생이면 기업에서 직접 와서 스카웃 제의를 했다.

- 면접본다 전화만 주면 1만엔(10만원)의 교통비가 우편으로 지급 되었고 면접보면 무려 10만엔(100만원) 의 면접비가 나왔고 100군데 면접 돌아 다니면서 외제차 뽑은 사람도 있었다.

-고등학생 세뱃돈이 30만엔(300만원) 이상이었다.

-중산층도 자녀에게 대학 입학선물로 외제차를 선물로 할 정도였다.

-파티나 행사도중 근처에 서성거리는 사람이 있으면 10만엔(100만원) 주고 자기파티 초대해 주었다. 그러다 보니 젊은이들 사이에 남의 파티에 돈도 벌고 뽕도 뽑는 파티족이 유행하기도 했다.

- 알바로 먹고 살고 돈이 필요할 때만 일하는 프리터가 유행하였다.

- 백수에게 매달 50만엔(500만원) 의 지원금이 나왔다.

- 땅이나 주식 담보로 하면 부르는 대로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 얼굴 몸매 좀 되는 여자가 혼자 다니면 중년 남자들이 온갖 돈다발을 주면서 사귀어주면 초 명품 사준다면서 헌팅하는 풍경이 흔했다.

- 여자가 데이트 할 때 빈손으로 나가면 남자가 다 내고 헤어질 때 여자에게 꽃다발과 수십 만엔의 용돈을 쥐어주기까지 했다.

- 어떤 제품이던 무조건 제일 비싼 것 부터 팔렸다. 심지어 편의점이나 서점에서 잡지를 살 때 내용도 안 보고 다짜고짜 젤 비싼걸루 주세요 라고 했을정도.

- 어느 가게나 오는 손님마다 일단 젤 비싼거 먼저 보여주세요 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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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버블 경제 시절, 도요타에 입사하면 신차를 공짜로 줬다는 믿기 힘든 전설.

 

115

은행에 연리 5%이상 되는 상품도 흔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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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기사 연봉이 800만엔 정도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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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애들은 절대 못 믿겠지만 공무원 하면 사람들이 개무시하던 시절이 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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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장이 대성황이라서 주차장에 들어가는 것만 정체로 2시간 걸리는 일도 흔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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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미친듯이 전 세계에서 돈을 버는 바람에 각국에서 빈축을 사는 통에

「일본이여, 쉬자」

같은 캠페인을 정부가 주도해서 할 정도였고 그런데도 돈이 남아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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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 이력서만 썼다 하면 모두 채용되는 통에 아차하면 몇 십개 회사에 동시 채용 되어서 어떻게 하면 완곡하게 입사를 거절하는가에 대한 메뉴얼 책도 나왔을 정도.

3

딱히 부자집 아들도 아니었던 대학생이 뉴욕에서 헬기를 타고 샴페인을 한 손에 들고 해돋이를 볼 수 있는 레벨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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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카야같은 곳에서도 선뜻 5만엔을 사용하던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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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에게 접대까지 받아가며 어쩔 수 없이 취직해 준 레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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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에 연봉 천만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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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 야마노테선 공사로 인해 땅을 팔게 된 대가로, 고작 35평 팔고 20억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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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입학 축하로 외제차를 사주는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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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솔직히 중산층 레벨에서는 그렇게까지 크게 혜택을 본 기억은 없다. 우리도 NTT 주식을 샀다가 결국 손해를 보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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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부격차가 엄청났었다. 요즘 말 많은 빈부격차는 그저 코웃음만 나올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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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면접은 기업 측에서 먼저 연구실까지 와서 데려가던 시절. 심지어 면접 중에 졸아도 취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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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내 세뱃돈이 30만엔을 넘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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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 시험 도중에 집으로 돌아갔지만 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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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의 면접에 간다.

교통비를 신청磯�. 1500엔 정도를 쓴다.

그럼 대략 1만 5천엔 정도가 들어온다.

어떤 바보들은 100개 정도의 회사를 돌아서 중고차를 샀다.

180

우수한 인재를 뽑은 회사의 경우에는 하와이로 장기 여행을 보내주는 회사도 있었다.

해외에 있으면 그 이상 다른 회사에 취직활동을 할 수 없으니까. 물론 기업이 여비나 식비, 숙박비 등 모든 비용을 댔다.

182

알바로 먹고사는 프리타가 멋있는 이미지를 가졌던 것도 버블시대 이야기?w

188

>>182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 같은 느낌? 심지어 영화화 되기도 했지.

216

닛케이 평균주가

1989년 38,915(종가)

1990년 23,848(종가)

222

정직원보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편이 더 돈을 많이 벌 수 있던 시대니까. 그리고 사실 당시 중소기업의 제조업은 대단한 불경기였다.

247

>>222

> 그리고 사실 당시 중소기업의 제조업은 대단한 불경기였다. 일손부족으로 면접에 온 놈은 제대로 공부한 적이 없는 쓰레기 뿐이었지. 정말로 비참했었어.

280

89년 당시의 잡지를 갖고 있어서 훑어봤더니 여자들이 「남친의 연봉은 2천만엔 정도면 충분해요」라고 말하고 있어w

338

신제품이 나오면, 비싼 것부터 순서대로 팔려나갔다. 비디오를 갖고 싶다! → 제일 비싼 건 어떤 거? 집은 뭘 사지?→제일 비싼 걸로 하기로 할까? 왜 그걸 샀어? → 제일 비싸서 정도.

435

그 시절은 일이 너무 많아 정말 바빴다. 매일 잔업에다 한 달에 이틀 정도 밖에 휴일이 없었어.

447

일손이 부족해서 도산하는 회사가 실존했던 것 같은데.

462

>>447

흑자 도산이라는 말이 실존하던 시대라고w

515

여자들은 남자들하고 놀라가도 빈 지갑만 들고 가도 됐어. 돈은 전부 남자가 내주고, 돌아갈 때는 지갑에 현찰 다발을 꽃아줄 정도였으니까.

539

정기예금의 금리가 8%가 넘었다. 게다가 변동성 금리가 아니기 때문에, 지금도 8%의 이자로 살고 있는 우리 할머니는 삶의 승리자.

548

지금은 니트인 나도 한달에 30만~40만엔의 봉급을 받을 수 있던 시대.

차를 사고, 당시의 아키하바라에 가서 PC부품을 매달 마구 사제꼈다.

식사는 적당히 외식, 주말에는 어디든지 시간 무제한 드라이브.

1만엔 지폐를 하루에 몇 장 쓰는지도 모를 정도로 생활하면서도 더 저금할 여유가 있었어.

그런데도 당시에는 가난하다는 소리를 들었어.

맨날 똑같은 차를 타고 다닌다고.

682

소비지출로 미국을 뛰어넘었던 꿈의 시대.

그것이 버블경제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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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프로그램도 심한 것들이 많았지.

가난한 가족들에게 초호화 생활을 경험하게 해주고 그 반응을 살핀다든지.

천박한 사람이 많았던 시대라는 생각이 든다.

775

누구나 주식에 뛰어들어서, 주부를 대상으로 한 주식강좌는 언제나 예약이 곧바로 마감될 만큼 대인기.

맨션에 살고 있었는데 몇 개의 부동산 업체에게 전화가 와서 「값이 오를텐데, 댁의 견적을 뽑아보게 해주십시요」

쇼와 59년, 조금 무리해서 샀던 1,900만엔짜리 맨션이 2년 후에 6,000만엔.

요트나 크루저가 미친듯이 팔려나갔지만 정작 즐기는 사람은 없어서 자택이나 직장에 비를 맞게 내버려 두고, 심지어 사놓고 단 한번도 바다에 띄워본 적 없는 오너도 많았어.

집이나 토지를 사고 싶다고 은행에 말만 하면 거의 무심사로 계속 융자를 해줬지.

경기가 워낙에 좋다보니 젊은 이들도 적당히 편한 일에 종사하기 위해 블루칼라 직업들은 일은 넘쳐나는데

일손이 부족해서 도산이 속출.

고졸의 스무살 도장공이나 목수 견습생 급여가 월 40만엔을 넘겼어. 그런데도 사람이 없었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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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의 23개 구의 땅 값>미국 전 국토의 땅값

진짜인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사실이라고 들은 것 같다.

일본 2천년 역사를 통틀어서 가장 화려하게 빛나던 시절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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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기업 TOP 10을 전부 일본 기업이 차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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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총액이 NTT 주식>서독의 모든 회사 주식이었다.

 

주식으로 벼락부자가 된 일본의 한 가정

 

1988년 일본 각 지방의 경제력을 국가에 대입한 결과
택시는 5만엔(50만원) 이상을 보여주지 않으면 태워주지 않았다

 

1억 인구의 1인당 GDP가 세계 1위를 달성했을 당시, 일본에게 붙여진 별명 "1억 중산층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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