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뉴스 사건 사고

6.25 때 일본인들의 도움 “한반도 해역 기뢰 제거는 전투행위 … 비밀로 하라”

728x90
반응형

반일한국사학계에서 철저히 쉬쉬하는 6.25 때 한국군을 도와 북학군과 싸다가 전사한 일본군들의 희생과 협조

한국 반일역사교과서에서 절대로 싣지 않고 은폐하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는데 바로 일본인들의 6.25 때 한국을 도운 사실이다. 사실 저 이외에도 현대사에 이르기까지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엄청난 도움을 받아왔다. 하지만 6.25 때는 진짜 한국의 존망이 달려 있을 때여서 진짜 일본의 도움이 중요했다. '어려울 때 친구가 진짜 친구다.'라는 말로 비춰볼 때, 일본이야말로 진짜 한국의 친구였다. 지금은 문재인 때메 끝났지만.

인천상륙작전이 없었다면 한국은 지도상에서 사라졌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런 인천상륙작전 성공의 숨은 일등 공신이 바로 일본인들의 '기뢰제거' 작업이었다. 조수간만의 차가 심한 서해에서 북한군이 깔아놓은 기뢰는 미군에게 있어서 여간 골치아픈 걸림돌이 아니었다. 그때 그 기뢰들을 제거한 것이 당시 패망한 일본에 있던 일본어부들과 일본군인들이었다. 그 위험한 전시상황에서 목숨을 걸고 한국을 위해 기뢰를 제거하다 몇 명이 사망했는지는 아직도 정확한 데이터가 없다. GHQ가 통치하던 시기였고 GHQ 말이 곧 법이었기 때문에 일본정부가 기뢰제거 하다가 희생된 일본인들을 집계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던 시기였다.

현대 한국사 교과서 어디에도 실린 적 없는 일본의 도움 사례들 중 한 사례이다. 일본의 은혜를 원수로 갚는 반일조센징들은 이걸 보고 또 무슨 개소리를 생각 할지.

'사실 그대로를 기록한 것이 역사'라고 랑케가 그랬던가. 최소 랑케가 한국에 있었다면 사학계에서 퇴출된 지 오래였을 거다. 이제라도 일본의 한국원조 사례들이 조금씩 밝혀지고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다음은 해당 기사의 첫 부분이다. 해당 기사는 링크 타고 가서 읽어봐라. 반일사학계 양아치새끼들이 해당 기사 내리라고 압력넣을지도 모르겠다. 짤리기 전에 읽어봐라.

https://news.joins.com/article/21043425

-----------------------------------------------------------------------------------------------------------------

일본이 6·25전쟁 때 한반도에서 미군이 주도한 유엔군을 도와 실질적 군사작전에 해당하는 활동을 광범위하게 전개했던 사실이 국내외 각종 자료에서 확인됐다.
1945년 8월 태평양전쟁 패배 후 일본군은 한반도에서 물러갔다. 하지만 불과 5년 만인 50년 옛 일본 군인 등을 비롯한 다수의 일본인이 한반도에 다시 들어와 비밀리에 군사작전에 참여한 것이다.
중앙SUNDAY는 오쿠보 다케오(大久保武雄) 전 일본 해상보안청 장관의 회고록 『해명(海鳴)의 날들』(1978년), 일본 정부의 『해상보안청 50년사』(1998년), 일본 방위연구소 타니무라 후미오(谷村文雄) 연구원의 일본 특별소해대(掃海隊) 활동 관련 학술 논문, 일본 학자 오누마 히사오(大沼久夫)가 일본 외무성 외교사료관에서 발굴한 유엔군 총사령부(GHQ) 문서,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의 도쿄대 박사학위 논문(조선전쟁과 일본), 양영조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군사부장이 발굴한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의 대전 전투 관련 기록, 일본 아사히(朝日)신문의 기획 보도,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6·25 일본 참전의 비밀’(박건식 박건식 연출) 등의 자료를 종합 분석해 일본의 6·25전쟁 관련 행적을 재구성했다.

(이하 생략)

728x90
반응형